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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룬뫼는 오리지널 캐릭터의 인게임 커스터마이징 버전으로, 블&소 자캐들 중에서도 창작 설정의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큰 설정부터 자잘한 외형 디테일까지, 인게임과 상이한 부분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풍월을 읊으면 밤바람 달빛이 되고 계절을 노래하면 가을 볕 스민 국화가 되리니,

세상에 월하미인이 따로 있겠는가. 발딛고 선 곳의 지명조차 잊으리라."

 

1

 

 운남雲南지방은 예로부터 들과 숲이 푸르르고 정기가 맑아, 몸을 수련하고 기를 쌓기 좋다고 전해 왔다. 또한 굳세고 높지는 않으나 산수가 호젓하고 고즈넉한 맛이 있어 시사와 방랑객들이 자주 찾았다. 

 

 그 중에서도 칠정호七淨湖 는 운남의 명소로 이름난 곳이다. 이는 일곱 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마치 하늘의 별자리처럼 모여 있어 붙은 이름으로 물의 푸르고 고요한 기운이 사방에 뻗쳐 있었다.

 

 일곱 개의 호수가 각각의 하늘을 담은 운남의 아름다운 들에서 물이 흘러드는 길을 따라 고지대로 올라가다 보면, 이 지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제법 높이가 있는 산을 만나게 되는데, 이 벽산을 주산으로 하는 풍수의 자리가 바로 칠정호의 수원지이며 이곳에 서씨 세가가 자리잡고 있다.

 

 아직 호수를 이루기 전의 물길들이 계곡에서부터 타고 내려와 잎맥처럼 너르게 땅에 퍼져 있고, 군데군데 샘과 아담한 폭포가 흘렀다. 물풀과 풀꽃 사이사이로 꼭 필요한 위치마다 작은 돌계단, 몇 걸음이면 건너는 나무다리 따위가 있어 사람이 다니는 데 불편함이 없었으며, 배열을 눈으로 좇다 보면 길을 따르고 있는 듯한 석등들도 풍광과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개중에 조금 크고 깊은 물가에는 두 사람 가량이 탈 수 있을 나무배가 기슭에 대어져 있다. 그리고 원래 그곳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자리잡은 건물들. 세가는 제법 넓고 컸으나 번잡하지 않고 그 모습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서룬뫼는 서씨 세가의 맏딸로 나고 자랐는데, 수원에 자리잡고 있는 만큼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은 아니었다. 일가 친척들이 날마다 주로 보는 얼굴이고 듣는 이야기였으며 다만 가문과 인연이 있는 이들이 종종 방문하여 며칠이나 몇 주간 머물다 갔다.

 

 전하는 말로는, 아주 먼 옛날에 신선들이 하계下界의 터를 다질 때, 세상의 균형을 바로잡아 누르는 네 곳의 지맥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서씨 세가를 둘러싼 산과 호수라 했다. 그리고 이곳에 사람이 머물러 살면서 터를 지키는 역할을 맡은 것이 가문의 시초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세가는 그 지방 근처의 어떤 노인들도 기억하기는커녕 전해들은 적조차 없을 만큼 오래 전부터 그곳에 있어 왔으므로 이러한 전설은 사실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서룬뫼의 대에 이르러 전설은 그저 전설로 남았을 뿐 현재의 가주조차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그것은 어느, 노을이 타는 듯한 주홍빛이었던 저녁의 일이다. 서룬뫼의 아버지는 무공 외에도 딸에게 바둑을 가르쳐 대국하는 것을 즐겼는데, 그날도 부녀가 뜰의 정자에서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었다. 조그마한 딸이 장고하는 것을 웃으며 내려보다가 가주는 문득 여름날의 밤이 지나치게 서늘함을 느꼈다. 온난한 공기와 으슥한 냉기가 맞부딪히는 곳에서부터 균열이 일어났고, 눈으로 그 틈새를 볼 수 있을 즈음에는 이미 어디서 왔는지 모를 검은 도포를 입은 자들이 마당에 자리잡고 서 있었다.

 

 세가는 분쟁과 연이 없는 곳이라 사병을 두지 않았다. 침입자들을 저지할 새도 없이, 검은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하늘에는 무거운 구름이 머리 위까지 닿을 듯 내려앉았다. 이상한 기운을 느낀 집안 사람들이 뛰쳐나왔으나 이미 허공에 일렁이는 동공洞空이 열린 뒤였다. 

 

 그러나 섣불리 이계의 문을 열려 한 시도는 그들조차 원하지 않던 재앙으로 나타난다. 본래 통해야 할 길을 벗어나 시공이 기이하게 얽히고 들로 흘러나가는 물길이 저마다 역류했다. 세가 한가운데에 열린 뒤틀린 용맥은, 버티고 서 있기 힘든 세찬 바람으로 불어당겼다. 물과 흙을 빨아들인 회오리가 솟으며 하늘을 찢었다. 그 힘이 사람들은 물론이요 지표와 건물들까지도 부수기 시작했는데 그때 서룬뫼는 아버지가 외치는 대로 바깥채의 사랑방에 숨어 있다가 눈앞에서 두 쪽으로 찢어지는 벽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2

 

 서룬뫼가 깨어난 곳은 낯선 숲이었는데, 처음에 그녀는 제가 운남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주변을 수소문해도 그날 벌어진 사건은커녕 자신의 집안을 아는 이조차 드물었다. 수중에 있는 것은 저와 함께 딸려 날아온 옷 한 벌과 약간의 패물, 그리고 아직 그녀의 손으로는 지공을 옳게 막을 수도 없는 대금 한 자루였다. 이후의 서룬뫼는 복수를 위해 무공을 수련하고, 그날의 흔적을 찾으면서 청소년기의 모든 시간을 보낸다.

 

 몇 년이 지나 그녀가 듣게 된 것은 흑산黑山이라는 지명이었는데, 세가를 습격하고 용맥을 연 무리들의 근거지라 했다. 흑산은 지세가 우묵하고 사철 그늘져서, 세상의 차고 어두운 기운이 자연스레 고이는 형세를 하고 있었다. 그 짙은 음의 힘으로 인해 흑산은 자라는 풀과 나무, 흐르는 물이 모두 번뜩이는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오래 머물면 전신에 냉기가 스며들어 기력이 잠식되고 한여름에도 추위를 느끼게 되므로 일주일 이상 산 속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근처에서 독초를 캐는 노인이 조언했다.

 

 일주일을 헤매고 삼일 쉬기를 번갈아 하며 서룬뫼는 오래도록 산에 머물렀다. 그리고 오랜 추적행 끝에 마침내 흑산의 본거지를 찾아내나 그 결과는 허탈하기만 하다. 잘못된 의식으로 인해 그날의 세가멸족과 관련한 인물들은 탁기에 잠식되어 이미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혹은, 목숨이 붙어 있더라도 전신의 기혈이 뒤틀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채로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기만 하는 상태인 채로 남거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남은 인물들을 찾아가 보지만 그들에게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누구의 목숨도 거두지 못했고, 눈앞에서 탁기로 인해 짙은 보랏빛이 된 피를 쏟으며 숨을 거둔 이를 가만히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서룬뫼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관련자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의 조각을 모았다. 

 

 서룬뫼는, 가장 먼저 흑산에 자리잡고 용맥을 열 계획을 세운 장본인이라는 흑산여주의 이름을 듣는다. 그녀는 용맥의 독기를 가까스로 다스리며 연명 중인데, 운국의 국사찰과 머지않은 맥안봉霡岸峰의 외딴 사당에서 기거하고 있다 하였다. 서룬뫼는 곧장 맥안봉으로 향한다.

 

 도착한 사당은 생각보다도 찾기 쉬운 곳이었으나, 들어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움직인 흔적보다는 정리한 후였고 사람의 손이 당분간 닿지 않아 모든 곳에 흰 먼지가 쌓여 있었다. 흑산여주의 행방이 잘못된 정보였는지, 아니라면 어떤 단서라도 남아 있지는 않은지 주위를 살피다가 서룬뫼는 향로 옆의 탁자에서 한 권의 수기手記를 발견한다.

 

 

 

 흑산여주의 이름은 여옥으로, 본디 운국 공신 집안의 딸이었다. 20세가 넘어 뒤늦게 입궁해 여타 후궁들과는 달리 진심으로 황제를 사랑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좌장군과 후궁의 간통 소동에 전혀 엉뚱한 누명을 쓰고 냉궁으로 쫒겨난다. 증언은 있으나 물증이 존재하지 않아 유폐 상태에 머물러 있던 도중, 은밀하게 찾아온 병사들에게 끌려가 눈이 멀고 만다. 스스로의 구명을 시도할 힘이나 여건이 전혀 없어 하루하루 세월만을 보내다, 몇 년 후에 뜻밖에도 궁 바깥으로 보내진다. 들려 오는 소식으로는 과거 사건의 내막이 밝혀졌으며 억울함에 대한 보상으로 아버지의 관직의 품계가 올라갔다고 한다.

 

 병사에게서 마지막으로, 가문에서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 여옥은 기다렸으나 아무 기별이 없다. 궁에서 내쳐진 눈먼 여자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냉대를 견디지 못하고 곧 자리를 떠난다.

 

 이후 여옥은 초야에 묻혀 생을 마감하기를 바라지만 배후를 알 수 없는 독수가 여러 차례 그녀를 노린다. 거듭하는 처참한 구사일생, 지친 마음에서 조금씩 의문과 원망 그리고 악이 싹트기 시작한다. 여옥은 자신의 인생을 이와 같이 만든 인물이 누구이고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을 밝혀내어 갚거나 그렇잖다면 운국 황실의 사람들을 다 죽이고 저도 함께 죽을 작정이었다.

 

 

 

 이어지는 것은 흑산의 이야기이나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 제물이나 다른 대비 없이 그저 섣불리 이계의 문을 열려고 들었던, 그 음모의 규모는 초라했고 생각보다도 덧없었으며, 기나긴 추적행에 서룬뫼 스스로도 지친 것인지 증오보다 처절함이 앞섰다.

 

 문득 인기척이 들렸다. 돌아보니 장삼을 입은 여승이다. 사당에 사람이 찾아왔다는 것을 들어, 절에서 사람이 나온 모양이었다. 여승은 사당에 기거하고 있던 여옥이 두 달 전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서룬뫼에게 시신을 거두겠느냐고 묻는다. 아마도 그녀가 여옥과 연고가 있는 자라고 여겼을 것이다. 서룬뫼는 고개를 젓고 걸어나왔다.

 

 허탈한 걸음을 가다가, 손안에 아직도 수기가 들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돌아가서, 여승에게 거두지 않은 시신은 어찌 하느냐고 묻자 화장火葬한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이것을 함께 불태워 달라 청하며 수기를 건넨다. 여승은 합장했고 서룬뫼는 발길을 돌렸다. 돌리다가, 주저앉아 망연자실한다.

 

 

 

 

 

 

 

3

 

 이후 서룬뫼는 한동안 정처없이 방랑한다. 몸이 갈 곳뿐만 아니라 마음도 머무를 곳이 없어, 위험을 피하지 않고 길손임을 자처하지도 않고 마치 광인과도 같이 세상을 돌아다녔다. 유일하게 생각했고 성취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단 하나의 목표를 잃은 후 남은 것은 낙담과 절망뿐.

(사실 여기서 세상의 호의를 보여줄 친구를 하나 만나면 좋겠고 그렇게 마음의 치유가 시작되고 그래서 아는 이는 많지만 지기는 적은 룬뫼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젤 자연스러우면서도 스토리전개에 어울리고 심지어 관계도 생기는...!) (어쩌지 이만큼 생각하니까 이거말고 다른 거 고르고 싶지 않아 빨리 친구 찾아야해) (네 그래서 그렇게 룬뫼가 개심했다구 합니다...날로 먹는 거 같지만 비워두고 싶어 그래서 스토리가 이어지는데↓) 

 

 

 서룬뫼는 원과 한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죽음을 맞이했거나 자신이 죽음을 목격한 사건의 관계자들을 다시 하나하나 찾아가기로 한다. 구천을 떠돌고 있는 과거의 원혼들을 성불시키는 여행. 복수만을 위해 달리고 있던 그녀의 눈에 이 때부터 하나둘씩 세상의 모습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홀로 노 저어 가는 배의 호젓함, 사공의 시름 섞인 푸념과 한잔 나눠 마시는 술, 강을 따라 흘러가며 난데없이 풀어지는 인생 이야기. 풀은 향기로웠고 버들이 스쳤다.

 

 여행은 과거의 마침점들을 따라가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마음의 마침점들을 따라가는 것이기도 했다. 한 발 한 발, 죽은 이의 혼과 살아 있는 자신의 마음을 달래면서 서룬뫼는 스스로 모든 인연을 마무리짓고 미래의 삶을 향한다. 그녀의 나이 스물셋이었다.

 

 마음이 자유로우니 길 위에서는 시름도 벗이다. 어릴 적부터 줄곧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성정은 되지 못했다. 짐작치 못한 시작이었으나 이제 자신의 것이 된 방랑벽, 길을 가는 것이 삶이요 또한 집. 천하를 주유하면서 도깨비들의 마을이며 서역의 왕부까지 수많은 곳을 다니고 사람을 만나며, 그 각각의 빛깔로 인생을 칠해 나간다.

 

 이 때쯤부터 무공의 연마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제 몸 하나 넉넉히 지킬 수 있으면, 그것으로 그만 아니겠는가. 절정고수가 되라면 오히려 사양할 판이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면 정체를 숨기고 내기 바둑은 어찌 둘 것이며, 마을 잔치판에 슬쩍 끼어들어 술을 얻어먹고 가무에 심취하기도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므로.

 

 예복과 함께 어릴 때부터 지니고 있던 대금을 익혀 연주하기 시작한다. 길 가는 차림은, 흰 바지저고리에 단출한 괴나리봇짐, 거기에 찔러넣은 악기 한 자루. 곁에 사람이 있으면 사람이 벗, 홀로 길을 걸으면 구름과 바람이 벗. 문득 바람결에 소리 한 곡조 실어 보내다.

 

 

 

 

 

 

 

4

 

 서룬뫼가 동생과 재회한 것은 어느 시골 마을의 주막에서였다. 장안의 그 유명하다는 도화원桃花園을 구경해 볼 심산으로 가벼이 오른 길이었다. 평상에 앉아서 점심을 하던 중 들어서는 길손에게 눈을 돌렸는데, 순간 자기 자신이 아닌가 싶을 만큼 닮은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급히 이어지는 회상.

 

 룬뫼에게는 다섯 살 어린 여동생인 서하록이 있었는데, 어릴 적의 난리 후로 소식을 모른 채 그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하록은 몇 달 전에 겨우 혼자 걸을 수 있게 된 아기였던 것이다. 혹시 무사히 자랐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문득 상상하곤 하던 그대로의 모습이 반갑고 눈물겨웠다. 통성명과, 뜻밖의 자매 상봉.

 

 하록은 다행스럽게도, 한 변방의 어촌에서 양부모를 만나 풍족하지는 못해도 평범하고 행복하게 성장했다 하였다. 그리고 이제 다시 만난 친언니. 기억에는 남아 있는 것인지, 뛸듯이 기뻐하는 하록에게 룬뫼는 끄덕끄덕 웃어 준다. 자신의 어두운 시절에 대해서는 슬쩍 접어둔 채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눈다. 과거가 아무렴 어떠하랴. 지금의 이 만남이 중요한 것이다.

 

 어릴 적 헤어지고서는 이십년도 더 지난 후의 사연들이다. 잠시간의 대화로 회포를 풀 수 있을 리가 만무하여, 달이 휘영청 뜬 밤에 자매는 내일을 기약하며 잠들었다. 그러나 시골 주막의 창문 틈으로 다가온 검은 그림자들. 번뜩이는 칼날이 나즈막한 평온을 찢는다.

 

 손님도 몇 없는 주막에서 일대 소란이 벌어진다. 복면한 살수들은 자매의 목숨을 노리는 기세이고, 서룬뫼는 영문도 모른 채 하록과 등을 맞대고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겨우 만난 동생의 안위가 걱정되어 몇 차례 힘겹게 눈을 돌렸지만, 하록 또한 오랜 방랑 생활 중에 자신을 지키는 것에는 문제없는 모양인지 그럭저럭 침착한 모습이다. 와중에 느낀 것은 두 사람의 몸의 움직임. 검의 궤적은 다르지만 밑바탕이 같았다. 룬뫼가 어릴 적 수련하던 초식이자, 하록이 자신과 함께 휩쓸려 온 가문의 무공서를 보며 한 수 한 수 익혀 나간 동작들. 생사를 오가는 전투의 와중에도 검영劍影에는 향수와 애틋함이 겹쳤다.

 

 겨우 주변을 수습하고 나자 하록이 사연을 털어놓는다. 아까, 처음 만났을 때에는 숨기고 있던 이야기. 그녀가 길을 떠나게 된 것은 양부모님이 탁기로 인해 목숨을 잃은 후부터였으며, 친 가족의 행방과 과거에 대해서도 자기 나름대로 조사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조사 중에 흑룡교에 관한 단서를 잡게 된 것. 하록은 세가의 비극과 흑산의 이름, 그리고 흑산의 주술을 이어받은 흑룡교에 이르는 연결 고리를 알아내고서 그 후부터 흑룡교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리하여 얽히고설킨 악연이 만들어지며- 오늘과 같이 살수의 습격을 받은 것 또한 처음은 아니라는 것.

 

 서룬뫼가 흑산과 흑룡교의 관계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한때 그녀도 흑룡교를 추적하는 것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흑룡교는 흑산의 실패한 주술에서 남은 기운의 조각들을 모으며 태어난 마교집단이다. 그 규모와 체계성은 과거의 흑산에 비할 수 없이 컸으며, 지금은 대륙 전체에 그 세력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흑산의 관련자들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두 세력은 음모의 근원이 되는 '힘' 을 제외하면 연고가 없다. 서룬뫼는 무의미한 복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리한 지 오래였으므로 훗날 흑룡교의 시작에 대해 알게 된 이후에도 어렵잖게 거취를 결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록은 그렇지 않았다. 악연을 마주보고 택하는 하나의 갈림길. 아직도 마음의 아픔은 생생하기만 하며, 삶의 의지는 그 강철 같은 아픔을 붙잡고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룬뫼가 자신은 더 이상 복수하지 않음을, 과거를 놓아 주기로 했음을 말하자 하록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말을 하기는 어려웠으나 전후사정을 알게 되면 당연히 언니가 자신의 뜻을 지지하고 함께할 것이라고 여겼던 듯, 고개 저으며 드러내는 표정에는 일종의 배신감마저 깃들어 있었다. 복수를 그만두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권하는 언니의 말을 하록은 일축한다.

 

 어떻게 모르겠는가. 영문도 모른 채 생이별했고, 사라진 과거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과 관계이기에 곧 사라진 자아의 일부와도 같았다. 그래서 찾고 싶고, 그래서 간절하고, 그래서 사실을 알았을 때에 너무도 악에 받치는 심정. 그것은 자신도 걸었던 길이기에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신이 걸었던 고통스러운 길을 가지 않았으면 했다. 룬뫼는 계속해서 동생을 설득해 보려 하지만 하록은 완연히 냉랭해진다.

 

 "과거를 놓아 줘? 아니, 그건 포기한 거야. 언니의 과거를, 가족들을 저버린 거라고. 

나는 언니처럼 겁쟁이가 아니야. 나는 그만두지 않아. 계속 싸워나갈 거야."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그런 눈빛을 한 당신이 별로 기대되지도 않는걸....... 하지만 적어도 내 앞을 막지는 말아 줄래? 하록은 검을 들어올렸고, 룬뫼는 서늘한 그림자 속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

 

 

 이후, 룬뫼는 아무래도 동생이 걱정되어 하록의 소식에 계속해서 귀기울이고 있다. 분쟁은 그녀가 원치 않는 바이지만 자매의 정이 그녀를 부르는 곳에 분쟁이 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검무, 춤의 궤적은 허공을 둘로 갈랐다가도 곧 다시 잇곤 하지만 사람에게 겨누는 칼은 오직 하나의 급소만을 노린다. 더는 그러길 바라지 않음에도 나아가는 검의 끝은 일심一心.

서하록

 

서씨 세가의 둘째 딸, 서룬뫼의 동생. 24세, 검사.

어릴 적 흑산의 의식이 뒤틀어 놓은 대용맥으로 인해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어촌의 양부모와 오빠 밑에서 자랐다.

스무 살 무렵까지 단란한 가족들과 함께했으나 어촌이 탁기에 물들며 부모님이 희생당하고,

이후 오빠와도 사이가 틀어져 홀로 길을 떠나게 된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채워 줄 곳을 마땅히 찾지 못하고, 자신의 과거의 흔적을 좇으며 온 대륙을 돌아다닌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 서씨 세가와 얽힌 일들을 드문드문 알게 되고, 복수를 다짐하며 절치부심한다.

 

자신의 추적행을 말리는 서룬뫼를 납득하지 못하며, 언니는 힘없는 겁쟁이라고 쏘아붙인 후로 다시 보고 싶어하지도 않는 듯.

룬뫼는 동생의 선택이 걱정스러워, 좀처럼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한번씩 마지못해 하록을 돕는 때도 있다.

 

올해 봄이면 약 4년째 함께하고 있는 자캐 룬뫼입니다.

게임에서의 커스터마이징도 몇 년이 된 것이지만, 보고 또 봐도 애정이 샘솟아서 즐겁고 행복한 무림의 맏딸이에요.

 

거기다 어두운 복수의 길을 걷다가 결국 원과 한을 놓아주어 마음이 자유로워진, 멘탈갑 힐링캐 설정이라 보는 부모 입장에서도 대견하고 든든합니다(?)

다만 사람 인생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이제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되풀이할 것만 같은 동생이 그저 걱정이군요.

 

옷입히기게임인 블소에서 초록색 머리의 진녀를 덕질하기는 참으로 고난과 역경의 길입니다만, 의지와 사랑으로 극복하겠다는 굳은 마음을 하늘도 알아 주셨는지 문파복 디자인이 입고 태어난 듯 어울려서 요사이 스크린샷 앤 소울을 플레이하는 맛이 쏠쏠합니다. 

 

외형에서의 포인트는 붓으로 쓱쓱 그은 것처럼 떨어지는 이목구비와 처마의 곡선 같은 눈매,

그리고 서글서글한 인상 위에 얹은 진한 중국풍의 화장입니다. 가만히 있을 때는 단아한 중국 미인 같은 느낌이고, 웃을 때는 상당히 친근합니다.

 

게임 내에서도 이심전심의 맏딸이라 부캐들에게 금을 조금씩 나눠주고 있습니다. 한번씩 미안하기도 하지만 성격과 설정에 부합하니까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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